posted by 파슈늉 2011. 12. 24. 08:39
메리 크리스마스!

어제 강남역에서 올해의 첫눈을 맞았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이년 반 만에 조우하는 동주오빠랑 끊김없이 연락을 주고받아온 태우오빠랑 같이 만났다.
원고 작업 했던 게 2007년 말 2008년 초니까, 벌써 4년이나 지난 일이다.
그 때 태우오빠, 준수오빠, 동주오빠랑 같이 진탕 술을 마셨던 강남역 이자카야에 다시 걸음했다. 어쩐지 그 때 먹었던 것만 같은 오코노미야끼에 얼큰수제비, 사케를 시켰고 그 때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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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2 13:46 

여기는 반포동 반지하실이다 :-)

 

동주오빠랑 준수오ㅃㅏ랑 태우오빠랑 하경이랑 있다

사실 태우오빠는 재수했지만 07이고 88이니까 나랑 동갑인거다

근데 내가 존댓말 해주고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난천사니까

 

원고정리 해야되는데

다들 푹 퍼져있다............ㅜ_ㅜ 하기싫다잉

하경이만 빨빨거리면서 청소기밀고 돌아댕기고..

난 싸이질하고 ㅋㅋㅋㅋㅋㅋ

방금전에 텔레비전에서 마이걸 하길래 또 침흘리면서 이동욱을 감상했다.

 

 

휴 그래도 열심히해야지!!!!!!!!!!!!!!아자아자화이팅!!!

 

아 놔

소개팅받고싶다




박동주 : 넌 천사니? 이런 천사는 처음이다.ㅋ (2007-12-23 02:55)




2007.12.24 12:06 

크리스마스 이브다.

 

난 지금 반지하실에 있다 ^^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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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부분, 태우 오빠가 기억하는 부분, 동주 오빠가 기억하는 부분이 서로 달라 다 모아놓고 보니 흐릿하던 게 점점 선명하고 분명해졌다. 그리운 옛날. 그립고, 분명히 행복했던 기억이긴 하지만 지금 내게 다시 돌아가겠니, 하면 아마 아니오 할 것 같다. 
이런 마음 가짐으로 오늘을 살 수 있음이 감사하다. 
돌아가서 새로운 4년을 살고싶단 후회로 점철된 삶을 살지 않았음이 다행스럽다.


이자카야에서 나올 때부터 슬 쌓이기 시작한 눈이
술 마시고 까페라는 상당히 이례적인 순서로 엔젤리너스 2층에 들어가 앉으니까 함박눈이 되어 내렸다. 한 쪽 벽면이 커다란 창으로 되어 있어 크고 굵은 눈발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마음이 참 좋았다. 연인과 함께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것도 4년 전 12월 23일도 분명히 함께 보냈던 사람들과, 진눈깨비도 아닌 함박눈을, 그들과 함께 지냈던 강남역에서.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이 되어 다시 한 번 나의 새내기 시절을 떠올려 생각해 보게 됐다. 



동주 오빠는 내년에 직장 생활을 계속하며 아기를 가질 계획이란다.
태우 오빠는 열심히 약대 편입을 준비할 계획, 대전의 그녀와 잘 됐으면 좋겠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다지 가능성이 있는 일인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취직을 하고, 쑥맥에서 벗어나기 위해 헤픈 연애를 해보자고 마음 먹고 있다. 꽁꽁 걸어잠갔던 문을 활짝 열어 보려 한다. 머리는 아니라지만 마음이 원하는 사람, 머리로는 너무 좋은 사람인데 마음이 가지 않는 사람. 날 고민케했던 이 두 경우 중 한 가지에라도 속하는 사람이라면, 우선은 만나 보려고 한다. 끝이 어떻게 될 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어제 두시 반 좀 넘어서 잠든 것 같은데 여덟시에 눈이 떠지고 그 뒤론 잠이 오지 않는다. 눈을 감고 더 잠을 청해볼까 했지만 마음을 바꾸었다. 낮에 졸려워지면 낮에 자면 될 거고, 졸려울 때 자야지 시간의 압박을 받을 필욘 없을 것 같아서.
일어난 김에 신문이나 읽어야겠다 하고 현관문을 열고 빼꼼히 고갤 내밀어 보니 조선일보는 와있고 한겨레는 아직 배달을 오지 않는다. 조선일보만 며칠을 읽다보니, 내 성향이 진보에 치우친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 소통 못한다는 MB가 어떤 마음으로 많은 결정들을 내리는지조차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래서 얘들이 수구꼴통이란 소릴 듣는구나' 싶다. 이런 편파적인 보도라니.. 맑은 콘텐츠를 만들고 세상에 숨은 진실들을 파헤쳐 알리자는 꿈을 품고 조선일보에 취직한 사람들은 얼마나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마음 고생할까. 조선일보는 읽을수록 한겨레의 입장은 어떤지 궁금해지게 만드는 신문이다.


확실히 기사에 기자의 주관이 묻어나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아주 객관적이고 사실만을 다루는 기사를 써야한다고 생각했던 이삼년 전과는 달리 글을 쓰는 사람이 담기지 않는 글은 불가능한 일이란 걸 점점 느낀다. 언론사의 입장이 반영되는 기사는 기자의 주관이 담긴 기사보다 훨씬 깔끔치 않은 냄새가 난다.
'한겨레의 입장'이 궁금하다는, 나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자연스레 나온 표현이 갑자기 와닿아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언론사 기자들의 성향이 아닌 언론사의 입장에 따라 쓰이는 기사의 불투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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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슈늉 2011. 12. 15. 01:15
가깝게 지냈던 친구가 나에게 소원해졌음을 느낄 때보다는,
친구의 소원해짐을 받아들이고
나 역시 내 마음에서 그 친구를 빼내려한다는 것을 느꼈을 때가 더 속상하다.
가까운 사람을 쉬이 놓지 않는 내 성격상
내가 놓으면 앞으로는 지속되기 어려울 관계가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같이 받아들여야 하며-


상처받기 싫으면 기대를 버리면 된다.

내 옆에 두는 사람은 아주 적고, 그 수가 적은 만큼 한 명 한 명이 나한테는 참 크다.
나는 내가 아닌 타인에게, 그게 아무리 가깝고 소중한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귀찮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너무너무 그렇다. 질척질척한 사람이 되느니 차가운 얼음장같은 사람이고 싶다. 누군가 나를 귀찮아할 바엔 차라리 원망하고 미워했으면 좋겠다. 

소중한 이는 얼마 되지 않고 그만큼 존재감도 크고. 결국 나를 더 많이 더 깊숙하게 열어보이게 되는데, 동시에 그들에게 절대 그 어떤 부담감도 주고 싶질 않다. 그래서 그들의 밀어냄을 느끼고 나면 더는 정말 다가설 수가 없다. 열었던 맘을 닫게 된다.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이랑 원망이 쌓이다가,
이럴 바엔 그냥 놓자 해버리게 된다. 아픔도 원망도 없어질 테니까. 
그 감정들은 더 많이 마음 쓰는 사람, 고스란히 남겨지는 사람이 갖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이기적이지만, 적어도 내가 그 쪽이 되지는 않겠다.

난 너랑 멀어지는 게 아프지만, 넌 그렇지 않은 것 같으니까.
부정당한 기분이고 밀쳐내진 기분이라 나는 너무 신경 쓰이는데
그렇게 마음 쓸 나를 잘 아는 너는 너무 태연하니까, 나는 지쳐.

너에게 칭얼대고 싶지도 너를 마음쓰게 하고 싶지도 신경쓰게 하고 싶지도 않아.
그러니까 내 쪽에서 놓으면 너도 편해지고 나도 편해질 것이다.




앞으로의 남은 인생, 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단정지어 생각해선 안된다.
평생 친구라는 건 앞으로 평생 갈 수 있을 것 같은 친구가 아니라,
평생을 살아내고 보니 이 친구는 쭉 내 옆에 있어 주었네 하는 친구.

평생 친구 운운하기엔 고작 스무 해 하고도 몇 년 밖에 살지 못한 내 평생이 너무 짧다.
사람과 사람은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멀어졌다간 또 다시 가까워진다.
평생 친구?

살아 보면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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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슈늉 2011. 12. 13. 21:44
쏟아지는 잠기운을 빌어 횡설수설하고 싶어졌다. 

아홉시 반이다.
주욱 멀쩡하다가 이 말도 안되는 시각에 이렇게 잠이 오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어제 이 시각 즈음 피로를 느끼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예컨대 우리 셋째이모 같은 사람들. 평소 잠자리에 들던 시각이 되면 견딜 수 없는 졸음이 쏟아진다고 한다. 시간을 알든 모르든, 그 시각이 되면 딱 자고 싶어지는 거다. 일정한 시각이 되면 배가 고파지는 걸 배꼽시계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개념일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의 육체는 평소의 습관에 커다란 영향을 받는 게 틀림없다. 
육체가 의식의 지배 하에 있다, 혹은 의식보다 하위개념이다 하는 생각이 들게 된 건 이런 이유다. 처음에 일정한 시각에 잠자리에 드는 것은 의식적으로 시작한 것일 터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육체는 의식이 의도한 룰에 익숙해지고 파블로프의 개와도 같은 양상을 띠게 되기 때문.
'잠이 온다'는 과정을 의식이 아닌 육체적 영역으로 가정하고 생각하면, 몇 시인지 모르면서도 일정한 시각이 되면 잠이 오는 것은 의식에 의해 단련된 육체가 의식을 뛰어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의식과는 무관하게 일정한 시각이 되면 잠이 쏟아지는 육체. 의식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의라고는 없다고 판단되는 육체 그 자체가 마치 스스로의 의지가 있는 것처럼 특정한 시각마다 특정한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이미 무의식이 영역이 아닐까.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가는 중간 과정에 있는 것이 비단 프로이트가 주장한 전의식만이 아니라, 어쩌면 의식에 의해 단련된 육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런 멍충이같은 잡생각을 해보게 된 것이다.

잠기운이 이렇게까지 쏟아져주지 않으면
이런 뻔뻔한 주절주절은 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맑을 정신으로 다시 읽으면 엄청 부끄러울 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상태에서 남긴 글이라고 해도 나는 결코 삭제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쓴 일기는 요즘의 근황만을 반영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담아내고 쏟아내려는 글을, 나는 쓰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머리가 멍하고 정신이 온전치 않은 지금이라 할지라도
나는 끊임없이 쏟아 붓고 있다. 더 나은 단어를 찾아, 정확히 내 머릿속의 두루뭉술한 개념들을 형태화할 수 있는 문장을 찾아, 동시에 안개낀 듯 선명치 않은 머릿속 생각들의 흐름을 더 명확하게 다듬어가면서. 


일기를 쓰는 습관이 없었다면,
2011년의 나는 지금의 나와 크게 다른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하고픈 말은 그거다,
이 일기를 나중에 읽고 오그라들 것 같아도 결코 지우지는 않을 거라는 것.
비공개로 바꾸게 될 수는 있을 테지만 물론.
어차피 지인들에게도 전혀 알리지 않고 쓰는 내 일기, 나만 보면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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